카테고리 없음2009. 3. 19. 14:00

어제 열렸던 2회 WBC 일본전 경기를 前경기에 이어 승리로 이끄는 바람에 지금 여느 투수보다도 '핫'한 봉중근.
4강진출에 앞서 꼭 이겼으면 했던 일본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서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멋지다.

봉중근 (1980년생 / 現 LG트윈스 투수 / 188cm, 93kg)

나는 봉중근을 봉투수라고 부른다.
그저 '아라한 장풍대작전' 엔딩에서 류승범이 봉태규를 '봉순경'이라고 불렀던 그 어감이 재밌어서이다.
오늘 알게된 건데,,,,, 나보다 어리다. ㅡㅜ

작년 LG트윈스의 야구를 지켜보다 눈에 띄는 투수가 있었으니 그가 봉중근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국내로 복귀한 선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고, 2007년에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내 관심 밖의 선수일 뿐이었다.
그러다 작년, 자칫 기아팬으로 변심할 위기에서 눈에 띈 봉중근은 야구에 대한 나의 애정에 다시 불을 질러주었다.
잘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와도 중간계투 및 마무리의 불안으로 승리를 못 챙기는 봉투수가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었다. 


사실 봉투수를 눈여겨 본 데에는 그의 남다른 노련미와 파워, 그리고 분위기 때문이었다.
봉투수의 경기를 보며 화이팅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면서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야구를 보며 느꼈던 전율과 감동이 오버랩되는 순간, LG의 전설 이상훈 선수를 다시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처음 야구를 접했던 스무살 시절, 친언니가 좋아하던 LG를 함께 응원하며 야구에 대해 알아갔다.
그러던 중 한참 20승을 올리며 잘 나가던 선수, 이상훈을 보게 되었고 그의 화려한 야구에 매료되고 말았다.
잘생기고 늘씬한 선수들도 많았지만 야구를 챙겨보게 하는 건 오직 이상훈에 의해서만이었다.
빠르고 힘있는 투구와 야생마처럼 흩날리는 머리, 그리고 이기는 경기는 야구를 스포츠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상훈 (1971년생 / 前 LG트윈스 투수 / 180cm, 86kg)

야구를 알게 되고 LG와 이상훈의 팬이었던 그 1995년이 또한 선수로서의 이상훈에게는 가장 절정의 해였다고 한다.
프로야구 데뷔 후 2년차에 18승, 그리고 3년차인 95년에 20승 투수가 되어 2년 연속 다승왕을 기록했다.
150km의 강속구와 탈삼진, 완투와 완봉... 긴 머리를 휘날리며 힘있는 투구를 뿜어대는 그에게 사람들은 야생마 또는 '삼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타자 3인방과 함께 이상훈은 신바람 야구의 전성기를 만들어 주고 LG트윈스는 가장 인기 있는 팀이 되어 갔다.


No.47 유니폼을 벗고 국내리그에서 이상훈이 떠났을 때, 나 역시 야구를 떠났다.
그이후 10년이란 세월이 지나 기아의 광팬인 남편을 따라 야구장을 들락날락하면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또 다른 47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를 만났고, 그가 봉중근이었다.

이상훈과는 반대로 봉중근은 전성기를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후 국내리그에서 재활한 사례이다.
젊은 시절의 강속구와 파워는 갖고 있지 않지만, 이상훈이 계속 국내에 남아 있었다면 보여줬을 활약을 재현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김병현이나 류현진과 같은 체력과 매서운 투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봉중근이 일본전을 두번이나 지켜낼 수 있었던 건 빼어난 투구 때문은 아니다.
그의 인터뷰처럼 150km의 위력적인 직구를 계속 뿜어댈 수 있었다면 국내에 복귀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20대 후반에 국내에 복귀하여 1년의 슬럼프를 겪은 봉중근이 꺼내든 카드는 노련한 경기 운영이다.
특히 이번 일본전에서 그 노련함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것 같다.


예전에 잠깐 보았던 '게임의 법칙'이란 책에서 야구의 확률 싸움에 대해 나온다.
투수와 타자의 싸움은 실력의 싸움도 있지만, 확률 싸움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빼어난 공을 던지는 투수도 그의 수를 읽히면 여지없이 공을 빼앗기고 만다.
160km를 바라보는 빠른 직구를 가진 한기주의 공도 결국 빠른 공에 단련이 되면 큰 한방으로 이어지고, 거침없이 던지는 김광현의 강속구도 일본 타자들에겐 통하지 못했다.

사실 봉중근의 경기는 조마조마하다.
빼어난 투구가 아니기 때문에 시원한 삼진보다는 볼넷이나 안타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타자를 이기기 위한 심리전과 볼 배합, 그리고 분위기 전환을 통해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이번 WBC는 정신력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둔 것이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볼 배합으로 확률 싸움에서 승리하였고, 든든한 수비진을 마음껏 활용하여 땅볼을 유도하였다.
타자가 진루하여도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오히려 타자를 이용하여 더블플레이를 만들어내기까지 하였고, 수비는 말할 것도 없다.
봉중근의 인터뷰를 통해 느끼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영리한 선수인 것 같다.

게다가 그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화면에 잡히는 모습은 늘 열정적이다. 마운드에서도, 선수석에서도...

어제 경기를 보고 누군가는 봉중근이 운이 좋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공만이 승리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확률의 싸움이며 누가 그 경기의 흐름을 가져가냐에 달려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점수를 뽑아내거나, 실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야구의 실력이다.

스포츠는, 특히 프로는 이기는 것이 실력이다.


2009년의 봉중근이 더욱 기대된다.



어제 중계 보다가 배꼽 빠질 뻔했던 명장면
이치로야 "위치로!!"

Posted by spcn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