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2009. 11. 15. 09:53


Part 1.

기존의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지 4개월...
친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한통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딸아이 목욕도 한번 제대로 못시켜주고, 집안엔 먼지와 쓰레기가 점점 쌓여가기만 한 4개월이었다.

그렇게도 힘든 삶의 여정은 4개월이나 지속되었다....
생각보다도 더욱 모질었던 시간들...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한 시간은 그렇게도 호락호락하질 않았었다.

이제 이달말이면 나혼자 슬쩍 빠져 한두달 휴식을 취할터..
둘째 아이가 고맙게도 핑계가 되어준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대안은 없이 시간만 자꾸 흐르고 배만 자꾸 불러간다.


누구나 말렸던 일을 기어이 시작했다.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도망치고 싶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울어버렸다.
그 눈물들이 어느 순간 흐르지 않은 때가 왔고, 난 그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몸은 지쳐갔지만 마음은 강해진 나를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웃으며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아니... 이젠 잘 모르는 것이지.
나보고 대단하다고들 한다.
아니... 이제 시작일 뿐.


처음은 나의 무지와 무모함으로 발을 디뎠지만,
이제는 지혜와 용기로 헤쳐나가야 할 때이다.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한 일.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가며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



Part 2.

새벽 6시 알람이 울린다.
여름엔 5시 알람이었지만,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면서 6시 알람으로 바꾸었다.
알람이 울리자 부랴부랴 문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만삭의 딸이 깰까봐 도망치듯 엄마는 그렇게 나가버린다.
그런 운 좋은 날은 부랴부랴 쫓아나가 엄마를 불러댄다.
엄마는 왜 안자고 일어났냐 하시지만 내 맘은 좀 더 편해진다.
20분 걸어갈 새벽거리를 차로 5분만에 태워드리니 내 맘은 편해진다.
보통은 5시 반이면 집을 나서는 엄마..

늦은 저녁 퇴근 시간,
새벽부터 하루종일 서서 일하시던 엄마는 다리조차 구부러지지 않아 겨우 차에 올라탄다.

밤 10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막걸리 한잔에 취해 잠이 드신다.
그래야만 좀더 푹 잘 수 있다 하신다.
매출이 좋은 날은 막걸리 한잔과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지만
좋지 않은 날은 말없이 TV를 보시다 꾸벅꾸벅 졸면서 잠이 드신다.

그렇게 4개월 시간동안 불효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Part 3.

어느덧 내 이름 석자는 저 멀리 지워지고 있다.
대신 친절한 '현진맘'이 되어 착하고 인상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모가 많이 났던 돌이 현실 속에서 둥글둥글하게 갈아지고 있다.
아직도 시간은 더 필요한 듯, 부족한 내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3개월 안에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거의 달성하고,
아이를 낳고 난 이후 시작할 본 게임을 위해 시간을 단련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많은 과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가면서 저 멀리 있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엄마를 좀 더 편하게 해드리는 것...

엄한 현실 속에서 부른 배따위는 장애가 되질 않는다.
새벽장보기, 하루종일의 노동, 운전, 손님응대....
모든 것이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감내해야 할 일들이다.
몸을 핑계로 한다면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다리가 불편한 노령의 엄마와 임신한 딸이 시작한 일.
엄마조차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미친년'이라 했다.

엄마와 나의 불편한 몸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신호를 보낸다.
엄마의 막걸리 한잔과 나의 지쳐 쓰러짐은 그나마 위안이 되어 준다.


생각보다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자영업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시작한 것이다.
무지와 무모함이 가져온 형벌...
그럼에도 그 속에서 꽃을 피워본다.
이젠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유동인구가 적은 위치에, 낮은 가격으로 인한 턱없는 마진, 새벽부터 밤늦도록 중노동이 필요한 가게를 인수했다.
좀 더 경험이 있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무모한 시작이었다.
또한 그것은 내가 해결할 과제가 되었다.

가격은 거부감이 없는 수준에서 살짝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많이 모자라지만...
인터넷 까페의 활용과 입소문으로 손님이 좀 더 늘었다. 물론 춥고 비오는 날은 매출이 반타작.
적은 유동인구를 위해 몸소 배달을 뛰고 있다.
내 월급 쪼개어 주방엔 보조 아주머니를 두어 엄마의 일을 조금 덜어주고 있다.

운이 좋아서였을까.
여기까지 나름 순조롭게 올 수 있었다.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지만, 출산 이후로 미뤄두고 있다.
2차 목표 또한...

어느날 남편이 나의 꿈을 얘기해보라 했다.
몇가지 읖조렸더니 나보고 그 사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인생을 시작한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나 보다.

Posted by spcnana